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표트르 크로포트킨 (문단 편집) == 여담 == * 감옥탈출은 한 편의 영화같았다. 동료 아나키스트들은 크로포트킨을 탈출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감옥병원에 땔감을 공급하는 10대의 짐마차가 오는 시간에 비슷한 마차를 보내서, 그 마차를 타고 탈출하는 계획이었다. 신호는 우산에 달린 풍선을 담 위로 띄워 보이게 하는 것이었지만 담은 높았고 그 우산을 든 여성의 키가 작아서 크로포트킨이 보지 못했다. 이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다른 신호체계를 구상해야 했다. 하지만 당국이 눈치를 챘고 경비는 강화되었다. 동료들은 크로포트킨에게 새로운 신호체계를 알리기 위해, 다음날 친적을 사칭한 한 여성의 면회를 통해 크로포트킨에게 정교한 시계를 전달했다. 그 시계 안에는 탈출의 모든 계획이 적힌 암호문이 들어 있었다. 너무나 대담해서 크로포트킨은 전율을 느꼈다. 새로운 신호는 바이올린을 키는 것이었다. 2시간 뒤, 땔감을 실은 짐마차들과 함께 동료의 마차가 병원 문을 통과했고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다. 바이올린 소리가 갑자기 격해졌고, 그 소리는 마치 "바로 지금이에요!"를 말하는 듯 했다. 크로포트킨은 있는 힘을 다해 마차로 뛰었다. 간수에게 아슬아슬하게 잡힐 뻔 했으나 다행히 마차에 탑승했고, 그 뒤로 20명이 쫓아오며 "저놈 잡아라! 저놈 잡아라!"를 소리쳤다. 한편, 병원 정문에서는 또다른 동료가 병원문을 지키는 보초병의 주의를 분산시킬 목적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 그건 기생충에 관한 이야기였다. 얼마나 얘기를 잘했던지 보초병은 그 마차가 병원 정문을 지나칠 때까지 토론에 집중하였다. 이러한 작전들이 한치의 오차없이 잘 수행되어, 가까스로 병원 문을 지나가는데 성공했다. 정해진 집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곤 면도를 했고 10분 후 집을 나와 역마차를 갈아탔다. 간수들은 마찬가지로 근처 역마차를 빌려 그들을 추격하려고 했으나, 반경 1km[* 정확히는 '1베르스타'라고 말함. 1베르스타는 1.067km이다.] 이내에 역마차는 한 대도 없었다. 모든 역마차를 동료들이 빌려 타고 가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탈출에 성공하자 동료는 마부에게 곧바로 최고급 레스토랑 '도논'에 가자고 말했다. 그 날 수많은 집이 수색당했지만, 그들이 갔던 최고급 레스토랑은 수색당하지 않았다. 그들은 손님으로 가득찬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탈출 성공을 축하했다. 이틀 뒤, 황제는 분노하여 "반드시 찾아내라"고 명령했지만, 크로포트킨은 이미 동료의 여권을 가지고 핀란드, 스웨덴를 지나 노르웨이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며칠동안 오슬로 항구에 증기선을 기다리면서 어디로 갈까를 고심하다가, 증기선 선미에 [[유니언 잭]]이 펄럭이는 것을 보고 영국으로 가기를 결심했다. * 그는 인류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 충돌이 불가피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막연한 열망을 가지고 하는 폭력이 되어선 안된다고 보았다. 즉, 혁명에 있어서 폭력투쟁은 부차적인 문제인데, 그 충돌의 폭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먼저 사상을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충돌의 마지막 국면에서 총과 화기보다 창조적인 힘에 의해 재건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가 얼마나 자유롭고 창조적인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심지어 변화를 반대했던 계급에게도 동의를 얻는 수준 높은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광범위한 사상적 동의 위에서 행해지는 충돌은 양쪽의 희생자 수를 훨씬 줄일 것이다. 투쟁이 낮은 수준의 공격 본능이 분출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크로포트킨 자서전』 김유곤 옮김. p.293] * 신문 칼럼식 기고문 <청년에게 고함>에서 과학이 엘리트를 위한 학문이 되었으며 제대로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 시대의 과학은 근본적인 목적과 방향성을 잃었으며 사회적 기성세력에 의해 잘못 사용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그는 과학의 대중화에 대한 낙관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모두에게 풀어진 기술은 오히려 과학 기술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고 그럼 우리가 못쓰는 황무지들도 풍요의 땅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흔히 크로포트킨이 농민의 삶에 중점을 맞춘 것에 크로포트킨이 생태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지만 크로포트킨은 엄연히 과학기술의 발전을 누구보다 긍정했던 사람으로 생태를 위해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멈추자는 것을 누구보다 반대하였다. >"당신이 참으로 당신의 학문에서 인류의 번영을 꾀한다면, 굉장한 질문이 야기될 것이다. 당신의 비판적인 정신이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과학은 소수의 삶을 더 기쁘게 만들 뿐이지 인류 전부에게는 미칠 수 없는 사치한 종목임을 당신은 단번에 관찰해야만 한다. 1세기 전에 과학은 우주의 기원에 관한 건전한 가정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섭렵하였거나 혹은 비판적인 참된 과학적 정신을 소유하고 있는가? 야만인 같은 편견과 미신을 소유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몇천 명은 방향을 잃어버리고 종교적 사기꾼의 꼭두각시로서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혹은 과학이 신체적 도덕적 건강을 위한 이성적 기초를 세우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살펴보자. 과학은 우리에게 우리가 어떻게 신체의 건강을 유지할지를 말해 주고, 도덕적ㆍ지적 행복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우리들 책 속에 사장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은 왜 그런가? 왜냐하면 오늘날 과학이 몇몇 특권층 사람만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불평등, 임금 노동자와 자본주의 주인들의 두 계층으로 나누어진 사회가, 이성적 삶의 원칙의 모든 가르침을, 인류의 10분의 9를 위해 아픈 아이러니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 >---- >『청년에게 고함』 * 임금제는 사회불평등의 기원이라 주장하였으며, 직업에 따라 대가의 차등을 둔다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직업의 사회 기여도를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한 직업의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무시하고 명령을 내리는자와 명령을 받는자를 구분지어 신 노예제를 만드는 것이라 하였다. * 분업에 대하여 부정적이었다. 분업은 한 사람이 평생 한가지 일만 하게 하여 그 사람의 사회 전체를 못보게 하여 우둔하게 만들고 자신의 일에 지루함을 느끼게 하여 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하였다. [각주] [[분류:러시아 제국/인물]][[분류:러시아의 지리학자]][[분류:소련의 정치인]][[분류:1842년 출생]][[분류:1921년 사망]][[분류:모스크바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